내가 한식고자라서 한식에 대한 기본이 안돼있음.
그래서 아마 한식관련 포스트는 전문가(집밥마스터 울엄마라던가)가 보면 좀 어이없을 것임. 이런 것도 모른다고...?
쨋든, 그 당연한 것들이 나한텐 공부를 나름 좀 해야하는 것들이라 어쩌다 보는 익명의 여러분은 그냥 그런가보다 해주시면 됨. 여기까지 서론.
묵은지랑 그냥 김치,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다름. 그냥 김치는 아삭새콤한 신선함이 매력이라면, 묵은지는 중후함이 있음. 진짜 그 무게감이 무겁진않은데… 하여튼 느껴짐.
둘의 차이?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디테일이 다름.
묵은지가 김치랑 뭐가 다른지, 그리고 왜 이렇게 담가야 되는지 한번 보겠음.
묵은지의 시간의 맛
일단 묵은지는 기본적으로 오래 묵혀야 됨. 이건 상식임. 김장하자마자 먹는 건 그냥 신선한 김치임. 반 년, 일 년, 길겐 1년이 넘게까지 숙성되면 그제서야 묵은지가 됨. 시간이 흘러가면서 김치 안의 유산균이 열일해서 그 특유의 시큼한 맛, 감칠맛, 그리고 묵직한 풍미가 생김. 아삭하면서 구수한맛이 나기까지하는 제대로 된 묵은지는 감동임. 그래서 같이 일하는 전직고수분님께 여쭤 본 걸 토대로 한 번 찌끄려봄..
고추가루를 많이 넣으면 안되는 이유
묵은지는 시간이 오래 가야 되는데, 고추가루를 팍팍 넣으면 발효가 막 속도를 내다가 어디선가 균형이 깨짐. 발효로 만들어내는 맛 성분들의 황금 밸런스가 무너짐. 그러면 그 묵직한 시원한 맛은 온데간데없고, 쓴맛이 올라오거나 뭔가 텁텁한 묵은지가 됨. 그러니까 고추가루는 적당히, 진짜 적당히 넣어야 됨. “맵다”가 아니라 “은은하게 얼큰하다” 정도로 맞추는 게 꿀팁임. 그래서 안매운고추가루를 써야함.
젓갈은 소량, 아니면 빼라
묵은지 담그는데 맛있게 하겠다고 젓갈을 팍팍 넣는다? 그건 묵은지에겐 독임. 왜냐면 젓갈은 발효를 폭주기관차로 만듦. 빨리 발효되면 그게 과발효가 되기 딱 좋음. 발효가 빨리 되면 김치가 익지도 못하고 조직이 무너짐.
대신 새우젓 같은 거 소량만 넣어서 감칠맛만 살짝 건드려주는 게 좋음. 젓갈 향 너무 강하면 묵은지 특유의 시원함 다 날아감.
설탕? 밸런스 맞챠라
설탕 넣는 거? 약간만. 진짜로. 설탕 많이 넣으면 유산균이 “땡큐베리마치!” 하면서 발효를 미친듯이 가속함. 근데 묵은지는 느긋하게 익어야 맛있음. 그냥 김치도 설탕은 단맛을 내는 게 아니라 김치의 발효도를 컨트롤하기 위해 넣는 도구에 가까움. 묵은지 만들 땐 설탕을 과하게 넣고 후회하지 말고, 유산균한테 그냥 적당한 간식만 주는 게 정답임. 그래서 얼마나 넣어야되냐고? 전직고수님은 소금이랑 밸런스를 맞춰야한다고 하셨음. 원래 한식고수들은 손 끝에 제 7의 감각이 있어서 손으로 직접 만져봐야하심... (계량으로 정하기에 변수가 많음)
풀은 넣지 마라
김치에 밀가루 풀, 찹쌀풀 넣으면 맛이 부드럽고 풍성해진다? 맞음. 근데 그건 그냥 김치 이야기고, 묵은지는 얘기가 다름. 풀 넣으면 전분이 발효를 지나치게 밀어붙임. 결국 오래 두면 국물이 텁텁해지고 물러짐을 촉진할 가능성도 커지며 질감도 이상해짐. 묵은지는 풀 없이 깔끔하게 발효시키는 게 기본임. 수분보다는 소금과 산미를 기반으로 천천히 발효되는 게 좋음. 같은 맥락에서, 물러지는 재료도 넣지마라.
옛날 조개껍질 넣던 거, 지금은 필요 없음
한때 할머니들이 김치 담글 때 조개껍질이나 달걀껍질 넣던 거 봤을 수도 있음. 조개껍질의 주성분인 탄산칼슘(CaCO₃)이 김치 국물에 녹아들면서 (아주 미세하지만) pH를 살짝 완충하거나, 배추·무 조직의 경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한다고 함. 음 근데 이건 소금에 불순물이 많던 시절 이야기임. 요즘은 소금도 고퀄이고, 배추 상태도 좋음. 굳이 그런 거 넣다가 껍질 안 씻긴 데서 이상한 거(예를들면 세균맨) 섞일 바에야 안 넣는 게 나음.
묵은지, 과학적으로 밸런스가 필요함
묵은지는 결국 발효와 숙성의 예술임. 그냥 김치랑 비슷해 보이지만 속도, 재료, 숙성 환경 하나하나가 다 다름.
묵은지의 맛있는 신맛과 감칠맛은 “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”는 믿음에서 나옴. 그래서 재료를 단순하고 깔끔하게, 발효 속도는 천천히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함. 이게 묵은지의 진리임.
묵은지 담글 때는 신중하게, 그리고 한 번 담근 묵은지는 믿고 기다리면 됨. 묵은지 담그는 건 예술이니까.
뭣보다 중요한 건 김냉은 필수임. 아니면 김장독을 묻을 수 있는 쎄멘 공구리 안친 마당(부동산)이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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